2010년 4월 8일 목요일

THE BOX: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

"1956년 4월 26일, 알루미늄으로 만든 58대의 트럭 몸체가 짐을 잔뜩 실은 채, 대형 크레인(기중기)에 의해 뉴저지 주 뉴어크에 정박해 있는 유조선으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꼬박 5일 뒤, 이 오래된 유조선 아이디얼X ideal X 호는 휴스턴으로 향한다. 한편, 휴스턴에서는 트럭 58대가 아이디얼X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박스를 나눠 싣고 목적지로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이 날은 운송의 대혁명을 예고하는 길로 기록될 것이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6년 4월 26일, 6m 길이의 강철상자를 마음먹고 운송에 활용하기 시작한 날. 대항해시대 이후로 7대양을 누빈 사람들과 그에 딸린 짐들을 생각해보면 컨테이너 상용화는 의외로 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이 주제를 다룬 첫번째 책(이 책)이 미국에서 2006년에 출판된 것도 의외로 늦다) 그러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가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운송비 절감에 따른 국제분업의 확대와 국제적인 규모의 경제 실현, 컨테이너 관련 시설 투자로 말미암은 항구의 순위 변화 등등.  그리고 한국 조선업의 급팽창도 컨테이너 붐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의 본문은 컨테이너 운송이라는 바람을 몰고 온 풍운아, 말콤 맥린의 활약을 중심으로 컨테이너 시스템이 해상 운송을 장악하게 된 과정을 추적하고, 그것이 세계 규모의 Just in Time 공급체계에 도달한 시점에서 마친다. 말라카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박이 400ML x 57Mw, 흘수선 19.5m, 약 18,000TEU 컨테이너선이라는 언급과 이러한 배를 수용할 수 있는 항구의 수심, 항구에서 연결할 수 있는 육상운송의 한계에 대해 언급한 건 새겨들을 만하다.

 

그리고, 본문이 80년대 말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컨테이너 산업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별로 나오지 않지만, 한국판 서문에는 이에 대해 애정어린 보론이 붙어있다.

 

"한국만큼 컨테이너 덕을 본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서문, 5p)...중략...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컨테이너가 그처럼 커다란 변화를 낳을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한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처럼 세계적인 무역국가로 거듭난 것은 이 '단순하고 멋대가리 없이 생긴 직육면체 상자'가 예기치 않게 낳은 수많은 결과 중 하나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9p)."

 

좋은 말이긴 한데, 서문은 누가 썼나? 밑도 끝도 없이 '한국의 독자들에게'인데, 이게 저자가 직접 쓴 건지, 아니면 한국 해운의 역사를 잘 아는 다른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 저자 서문이면 저자 서문이라고 붙이든지, 몇 년 몇 월 누구라고 쓴  사람을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주석과 참고문헌을 꼼꼼히 다 챙기고도 이래서 욕 먹는 출판사들이 꼭 있다. 물론, 번역과 교정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차 안에서 읽었기 때문에 몇 페이지인지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반달인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보통은 '야만적인' 정도로 번역할텐데...지나친 직역투를 지적하자면 공간이 모자랄테니 이만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책은 공간적 범위를 따라가면서 읽어야 한다. 속지에 주요 등장 도시가 나온 지도 하나 정도 넣어주었다면 정말 유용했을 것이다.

20100408

고백하건대,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난 꽤나 까칠한 인간이었다. 말귀를 못알아듣는 업체 사장님께 종종 소리지르고, 화내고, 들들 볶았다.

 

근데 부서 옮기고 나니 그대로 받네? 우리 설계 사람들, 작업범위를 애매하게 지적했다고 추가 설명과 구체화를 부탁했더니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TABBYCAT씨는 맨날 오지도 않은 걸 걱정하는데...블라블라블라..." 내가 아는 게 없어 전화 걸어서 확인하고자 하긴 했지만, 상당히 기분나빴다.

 

하지만 머리 식히고서 생각해보면, 나도 작년까지 업체에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사내에서 그러진 않았지만. 매번 얼굴보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정말 이 사람 싫다, 다신 얼굴 안 봐도 좋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역시 못하지.

 

그럼 오늘 나한테 소리를 지른 설계 담당자는 내 얼굴을 안 봐도 좋을 정도로 싫은 걸까? 아니면 원래 자기가 짜증나면 못 참는 성격인 걸까? 그도 아님 구매는 설계 꼬붕이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은, 남을 설득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다. 혹시 내 목소리나 말투에 남을 짜증나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면 고쳐서 잘 지내보고 싶다. 어쨌든 앞으로 배 나갈 때까진 계속 봐야 하는 사인데...

2010년 4월 6일 화요일

EBSE 이벤트페이지

http://www.ebse.co.kr/ebs/jsp/fhz/aie/Aie_NowEvent_List.jsp?article_id=0000000037817

 

ebs에서 무료로 영어강좌를 볼 수 있는 페이지.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종종 활용하고 있다.

 

굳이 떼어다 붙인 이유는...아이폰에 눈이 어두워서^^;

2010년 4월 4일 일요일

20100404

오랜만에 언니를 붙들고 크게 울었다. 물론 난 만화를 보다가도, 신문을 보다가도 눈물을 글썽이지만, 오늘은 1시간 넘게 제대로 울었다. 정리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다 보니 내가 정말 요 두달 동안 쌓인 게 많았더라.

 

이제 대충 정리가 되었는데, 내 문제는 대리 직함을 달고도 신입사원 수준이라는 데 있다. 과장님께 이번 주 내내 몇 번이나 질문/의논/보고를 했다가 꾸중을 들었던 것 때문에 내내 우울하고 피곤해 했지만, 내가 내 업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면 그 정도로 타격이 크지는 않았을 거다. 부서가 바뀌면서 전반적인 업무 내용이 너무 많이 바뀌었고, 만 4년 동안 일해온 것이 거의 쓸모 없게 되었다.

 

물론,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같이 전배온 4년차 J양은 이미 적응 완료해서 인정받고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난 너무 느리다. 눈치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잘 놀지도 못하고. 비교당하면서 오는 자격지심과 비뚤어진 자존심 때문에 한층 상처가 깊었다. 아무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내가 담당하던 일 7개 중 몇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이 체면 때문인지, 능력이 모자란다는 분함 때문인지, 나 때문에 업무가 늘어난 동료에게 미안해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언니를 귀찮게 하면서 한참 울고 나니 조금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언니도 1시간 넘어갈 즈음에는 진저리를 치면서 그리 자신 없으면 회사 때려 치우고 공부를 하든지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했다)

 

일단 난 노후 보장 변액보험 지출 때문에라도 7년은 회사를 다녀야 하니, 3년 남았다. 승진연한이 줄긴 했지만 아마도 난 4년이 지나도 과장 승진은 무리겠지. 대충 3년에서 4년 정도 지금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텐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 이상 지금 회사일도 열심히 해서 최소 밥값은 해야 하고. 영어는 내가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혼나면서 다시 배워야 한다.

 

아마, 앞으로도 몇 번씩 더 울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