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7일 화요일

20100727 - 어제의 사건에 대해

어제의 그 사건 관련해서, 아침에 과장님께 혼나는 꿈을 꿨다. 왜 네가 그 자리에 있었냐는, 피해자인 내가 오히려 혼나는 꿈(실제로 그 자리에서 과장님은 취해서 엎어져 있었지만) 이런 게 바로 자기검열하는 주체라는 거겠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건지, 결혼도 안 하고 애인도 없으니 주인없는 여자라고 생각해서 그러셨는지, 사람들이 나보고 꼬리 친다고 하지는 않을지...별별 생각이 다 든다.

 

...다행히 출근해보니 나한테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더라. 그닥 친하지는 않았던 선배 대리님(택시 잡아주신 그분)이 갑자기 아침 식당에서 괜찮냐고 물어오시고, 이 닦는데 화장실에서 옆 라인 여자 차장님이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테니 잊어버리라고 하셨다. 물론 나 모르는 새 뒷담화로 얘기가 돌 수는 있겠지만...그래도 대놓고 오히려 나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아야 하나 보다. 그래도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게 빤해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테니 잊어버리고 회식 자리에서 그 분 취하면 옆에 가지 말라는 정도다. 그리고 그 분께 술을 덜 권하겠다는 선배님들의 배려...

 

그러고 보면 술취했다는 거 참 편리한 면죄부다. 멀쩡한 정신으로 여사원한테 얼굴을 부비려 들면 고의성이 인정되겠지만, 술취해서 모르겠다고 하면 의도를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경우에 문제는 반복적으로, 특정인에게 집중해서 일어났는지에 따라서 성희롱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달라질 것 같다. 한 번 겪고 나니 공론화된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을 것 같다. 본인이 못 견뎌서 고발하고, 주위의 증언을 얻어 법원의 인정을 받을 정도의 피해가 생긴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앓았을까.

 

내 경우에도 두 번째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찌 될지 모른다. 두 번째가 되면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왜 네가 그 자리에 있었냐고 힐난하는 목소리가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이제 이직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20100726 - 성희롱 관련

오늘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술취한 부장님이 갑자기 날 껴안고 입을 맞추려 드는 순간의 황당함, 두려움, 수치심.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겠다. 다행히 한 기수 위의 선배 대리님들이 말려줘서 살았다(남자 선배가 부장님을 떼어내 주신 다음, 기혼인 여자 대리님이 나를 데리고 나와 바로 택시를 태워 보내주셨다).

 

아마도 부장님은 자기가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실 뿐더러, 설령 기억하신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내가 피해자(에 가까운 상황)가 된 지금 비로소 깨달았다. 부장님의 의도야 어쨌든 내가 헤픈 여자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의 술자리에서는 다행히 선배들이 바로 빼내서 택시를 태워 보냈고, 그 순간에는 나도 침착한 척, '제가 분위기 깬 건 아닌가요' 라고 배려하는 척, 술 취하지 않은 사람이 취한 사람을 생각하는 양 가식적인 얘길 건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헤어질 수 있었다. 근데, 과연 그게 술이 깬 다음에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자, 술이 깼다. 사람들이 과연 그 일을 기억할 때, 나를 순수한 피해자로 기억해줄까? 솔직히 나는 부장님의 어이없는 성희롱(으로 해석될 행동)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후 나를 바라볼 시선이 더 무섭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뒤에서 어떻게 말할지, 그게 두렵다. 정말 발 한 번 잘못 디디는 것만으로도 여자가 직장 생활 하는 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구나...

 

... 부서의 고참 대리님들은 다행히 부장님 술버릇을 아시는 것 같고 오늘 나를 보호해주셨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보였다는 것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이일에 대한 판단은 이 일에 대한 기억은 이후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조용히 부장님이 취하기 전에 나를 눈에 안 띄게 내보내 주면 나름 나를 동료로 인정해 주는 거고, 그냥 무작정 먹으라면 아무 생각 없는 거고... 뒤에서 내 욕하는 거면 그 사람은 날 밟고 싶은 거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유의 일은 같은 여자라도 직접 당해보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겠다는 거다. 부서 옮기고 초엽에 같이 전배온 여사원이 멋모르고 술취한 부장님을 데려다드리려다 생각없이 파라다이스라는 룸살롱에 따라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나도 그 여사원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내가 직접 당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소위 분위기를 깨면 안 되겠다는 생각, 직장 상사이니 내가 참아야지라는 생각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요상한 분위기가 되는 건 금방이다. 만약에 남자 고참 대리님이 부장님을 떼어내 주고, 여자 대리님이 날 바로 끄집어내 택시 태워보내주시지 않았으면, 내가 룸살롱 종업원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성질 머리를 못이겨 부장님을 한 대 치고 경찰서 신세를 졌을 수도 있다.

 

어찌 될 지는 모르지만 둘 다 여자인 내게 결코 유리하지는 않았을 거고, 한 번 그리 취급받으면 계속 그럴 수도 있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다. 앞으로 절대로 멋모르고 술자리에 오래 남는 일이 없도록, 한층 더 경계해야 겠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20100602 - 투표 완료

어제 내기축구의 여파로 겨우 일어나서 투표를 하고 왔다. 어제 유인물 보고 후보를 다 골라놓지 않았으면 꽤나 고생했을 듯. 이제 오늘 하루는 거리낌없이 놀 수 있다.

2010년 6월 1일 화요일

20100601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구를 했다. 물론 부서 내에서 하는 저녁 내기로, 여사원도 전원 참가^^;

 

별 도움은 안 됐지만, 남자들이 왜 그리 축구에 목숨을 거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자기가 뛰는 것도 아닌데 월드컵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경기 후에는 다들 지쳐서 저녁 먹고 집으로 직행. 내일 지방선거에 대비해서 공약 점검하고 찍을 사람을 정했다. 기숙사의 룸메이트들에게도 투표를 권하니 하루가 저물었다.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20100525 - 살아 있다.

출근해서 1시간 반 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드디어 부장님이 일을 주셨다. 역시, 너무 놀리니 옆라인 사람들과 형평을 고려하신 것 같다. 오랜만에 문서 작성을 해보니 바쁘지만 날아갈 것 같았다. 여기에 예비 거래처 손님들까지. 비록 첫번째 면담자는 에이전트 아저씨와 한국어로 얘기했지만, 두번째는 내가 직접 영어로 질문^^ 하루 30분 정도 회화 공부하고, 업무상 메일을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적절히 에이전트를 활용하니 훨씬 낫다.

 

덤으로, 괜찮은 책들도 읽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리뷰를 올려야 겠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20100524 - 죽음

오늘 아침에 셋째 고모가 돌아가셨다. 대장암이던가. 바로 어제 언니와 문병을 갔는데 얼굴 보고 가시려고 그랬나 싶다. 우린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셋째 고모의 얼굴이 너무나 닯아 있어 놀랐고, 기억에 남은 고운 모습이 다 벗어지고 빼짝 말라 황갈색으로 타버린 고모가 무섭기까지 해서 진저리를 쳤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우린 세상 천지에 자매 둘뿐이니 서로 폐끼치지 말자고, 저리 된 모습을 보느니 오지 말걸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근데...막상 이리 되니 잘 갔다 왔다 싶다. 물론 문자 한통으로 오라가라 하는 아비는 여전히 꼴보기 싫지만...그래도 이것으로 끈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 같다. 고모 넷 중에 제일 착하고 엄마와 우리에게 잘 해줬던 셋째 고모가 가버렸으니...이상하다. 왜 아버지보다도 지금 와서는 늙어버린 작은 엄마와 둘째 고모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까. 셋째 고모 문병가라고 찾지도 않던 딸을 부르던 아비는 왜 병원에 와 있지도 않았던 것일까. 어찌 됐든 더 엮일 일이 없어 다행이다. 이제는 장례도, 혼인도, 가지 않을 것이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사고루기담』, 아사다 지로(양억관 옮김)

국제도서전에서 리퍼제품이라고 하여 반값 밑으로 사온 책. 하지만 다 읽은 다음에도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안팔려서 재고처리를 했다고 하기엔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다.

 

무대는 아오야마 묘지 근처의 고급 빌딩 맨 위층, 이름은 사고루(沙高樓)라고 한다. 즉, 모래로 쌓은 높은 누각이다. 모임의 참석자들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로, 그날의 화자는 자신의 비밀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청자는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당연히 나오는 이야기는 기담인데...하츠 아키코나 온다 리쿠보다 좀더 현실을 강하게 깔고 있다. 슬쩍 환상적인 분위기가 풍기지만 아마도 사람이 만들어낸 것임에 분명한...

 

그래서 마지막 다섯번째 이야기 끝머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모래로 지은 높은 누각은 무르고 위험하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고 높은 곳을 향해왔다.

뒤를 돌아보니 사고루의 어둠 속에는 오늘밤 들은 이야기의 무게에 짓눌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독을 토해내는 대신 남이 토해내는 독도 마셔야 한다. 또는, 너무 많은 독을 마셔야 하기에 자신의 독도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고루의 기담 클럽은 그런 원리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305p)

 

이야기란 건 원래 그렇지...나도 가끔은 참을 수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