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5일 화요일

20100525 - 살아 있다.

출근해서 1시간 반 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드디어 부장님이 일을 주셨다. 역시, 너무 놀리니 옆라인 사람들과 형평을 고려하신 것 같다. 오랜만에 문서 작성을 해보니 바쁘지만 날아갈 것 같았다. 여기에 예비 거래처 손님들까지. 비록 첫번째 면담자는 에이전트 아저씨와 한국어로 얘기했지만, 두번째는 내가 직접 영어로 질문^^ 하루 30분 정도 회화 공부하고, 업무상 메일을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적절히 에이전트를 활용하니 훨씬 낫다.

 

덤으로, 괜찮은 책들도 읽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리뷰를 올려야 겠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20100524 - 죽음

오늘 아침에 셋째 고모가 돌아가셨다. 대장암이던가. 바로 어제 언니와 문병을 갔는데 얼굴 보고 가시려고 그랬나 싶다. 우린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셋째 고모의 얼굴이 너무나 닯아 있어 놀랐고, 기억에 남은 고운 모습이 다 벗어지고 빼짝 말라 황갈색으로 타버린 고모가 무섭기까지 해서 진저리를 쳤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우린 세상 천지에 자매 둘뿐이니 서로 폐끼치지 말자고, 저리 된 모습을 보느니 오지 말걸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근데...막상 이리 되니 잘 갔다 왔다 싶다. 물론 문자 한통으로 오라가라 하는 아비는 여전히 꼴보기 싫지만...그래도 이것으로 끈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 같다. 고모 넷 중에 제일 착하고 엄마와 우리에게 잘 해줬던 셋째 고모가 가버렸으니...이상하다. 왜 아버지보다도 지금 와서는 늙어버린 작은 엄마와 둘째 고모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까. 셋째 고모 문병가라고 찾지도 않던 딸을 부르던 아비는 왜 병원에 와 있지도 않았던 것일까. 어찌 됐든 더 엮일 일이 없어 다행이다. 이제는 장례도, 혼인도, 가지 않을 것이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사고루기담』, 아사다 지로(양억관 옮김)

국제도서전에서 리퍼제품이라고 하여 반값 밑으로 사온 책. 하지만 다 읽은 다음에도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안팔려서 재고처리를 했다고 하기엔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다.

 

무대는 아오야마 묘지 근처의 고급 빌딩 맨 위층, 이름은 사고루(沙高樓)라고 한다. 즉, 모래로 쌓은 높은 누각이다. 모임의 참석자들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로, 그날의 화자는 자신의 비밀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청자는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당연히 나오는 이야기는 기담인데...하츠 아키코나 온다 리쿠보다 좀더 현실을 강하게 깔고 있다. 슬쩍 환상적인 분위기가 풍기지만 아마도 사람이 만들어낸 것임에 분명한...

 

그래서 마지막 다섯번째 이야기 끝머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모래로 지은 높은 누각은 무르고 위험하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고 높은 곳을 향해왔다.

뒤를 돌아보니 사고루의 어둠 속에는 오늘밤 들은 이야기의 무게에 짓눌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독을 토해내는 대신 남이 토해내는 독도 마셔야 한다. 또는, 너무 많은 독을 마셔야 하기에 자신의 독도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고루의 기담 클럽은 그런 원리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305p)

 

이야기란 건 원래 그렇지...나도 가끔은 참을 수 없거든.

20100523 - 1주기

죽은 이의 한 때문일까, 어젯밤부터 비가 내렸다.

 

산 사람의 생은 아무일 없었던 듯 흘러가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영화_극장] 드래곤 길들이기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러 오랜만에 극장까지 나갔다.

 

본래 온가족의 오락용이므로 줄거리는 참 단순하다. 300년째 용들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바이킹 섬의 괴짜 소년 히컵이 신비의 드래곤을 길들여 나쁜 드래곤의 대왕(최종보스...)를 무찌르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 물론 이야기 마지막에서 착한 드래곤과 마을 사람들은 화해해서 새로운 삶으로.

 

100분이라는 요새 영화치고 짧은 시간 속에 필수적인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는 호평을 보고 예매했는데, 과연. 화사하고 속도감있는 화면을 제외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3D와 판타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아바타」와 비교하는 리뷰도 있었는데, 나는 결말만으로도「드래곤 길들이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바타」의 제이크는 상이군인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영웅이 되고 건강한 새몸을 손에 넣었지만,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은 살아남았지만 대가를 치렀기 때문. 분명 대가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는 '왜 그 용을 처음 봤을 때 죽이지 못했냐'는 아스트리드의 질문에 대한 히컵의 대답. "내가 겁먹은 만큼 그 녀석도 겁먹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물론 영화관에서 메모는 할 수 없으므로 부정확하다...) 상대방과 나의 같은 모습, 연민...아마도 자연보호운동은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축의 탄생도...

 

영화는 자유로운 인간과 드래곤의 평화로운 새삶으로 끝났지만, 글쎄...이제까지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모습은, 꼬리날개를 잘라서 드래곤을 길들일 수 있다면 일부러 불구로 만들어서 가축화를 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지브리의 비행신에 못지 않은 공중전과 화려한 불꽃의 묘사를 보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저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