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술취한 부장님이 갑자기 날 껴안고 입을 맞추려 드는 순간의 황당함, 두려움, 수치심.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겠다. 다행히 한 기수 위의 선배 대리님들이 말려줘서 살았다(남자 선배가 부장님을 떼어내 주신 다음, 기혼인 여자 대리님이 나를 데리고 나와 바로 택시를 태워 보내주셨다).
아마도 부장님은 자기가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실 뿐더러, 설령 기억하신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내가 피해자(에 가까운 상황)가 된 지금 비로소 깨달았다. 부장님의 의도야 어쨌든 내가 헤픈 여자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의 술자리에서는 다행히 선배들이 바로 빼내서 택시를 태워 보냈고, 그 순간에는 나도 침착한 척, '제가 분위기 깬 건 아닌가요' 라고 배려하는 척, 술 취하지 않은 사람이 취한 사람을 생각하는 양 가식적인 얘길 건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헤어질 수 있었다. 근데, 과연 그게 술이 깬 다음에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자, 술이 깼다. 사람들이 과연 그 일을 기억할 때, 나를 순수한 피해자로 기억해줄까? 솔직히 나는 부장님의 어이없는 성희롱(으로 해석될 행동)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후 나를 바라볼 시선이 더 무섭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뒤에서 어떻게 말할지, 그게 두렵다. 정말 발 한 번 잘못 디디는 것만으로도 여자가 직장 생활 하는 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구나...
... 부서의 고참 대리님들은 다행히 부장님 술버릇을 아시는 것 같고 오늘 나를 보호해주셨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보였다는 것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이일에 대한 판단은 이 일에 대한 기억은 이후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조용히 부장님이 취하기 전에 나를 눈에 안 띄게 내보내 주면 나름 나를 동료로 인정해 주는 거고, 그냥 무작정 먹으라면 아무 생각 없는 거고... 뒤에서 내 욕하는 거면 그 사람은 날 밟고 싶은 거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유의 일은 같은 여자라도 직접 당해보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겠다는 거다. 부서 옮기고 초엽에 같이 전배온 여사원이 멋모르고 술취한 부장님을 데려다드리려다 생각없이 파라다이스라는 룸살롱에 따라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나도 그 여사원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내가 직접 당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소위 분위기를 깨면 안 되겠다는 생각, 직장 상사이니 내가 참아야지라는 생각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요상한 분위기가 되는 건 금방이다. 만약에 남자 고참 대리님이 부장님을 떼어내 주고, 여자 대리님이 날 바로 끄집어내 택시 태워보내주시지 않았으면, 내가 룸살롱 종업원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성질 머리를 못이겨 부장님을 한 대 치고 경찰서 신세를 졌을 수도 있다.
어찌 될 지는 모르지만 둘 다 여자인 내게 결코 유리하지는 않았을 거고, 한 번 그리 취급받으면 계속 그럴 수도 있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다. 앞으로 절대로 멋모르고 술자리에 오래 남는 일이 없도록, 한층 더 경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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